조선의 왕을 말하다

꿈북저널, 책이 문화가 되는 길 2017. 3. 17. 00:40 Posted by 꿈꾸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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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는 한재가, 함경도는 기근이 들었는데, 임금께서 처소를 옮기시고 반찬의 가짓수를 줄인지 23일 만에 비가 내렸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중종 8년 5월 어느 날의 기록이다.



‘감선철악減膳撤樂’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근신하는 뜻에서 임금의 밥상에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음악을 폐하던 일을 말한다. 여기서 나라의 변고란 천재지변으로 태풍, 홍수, 호우, 폭풍, 해일, 폭설, 가뭄, 지진 등 자연계의 변화로 받는 재난을 말한다. 인재가 아닌 자연재해에도 임금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백성의 안위를 살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모든 것을 다 가졌을 것만 같은 조선시대 왕도 자신의 존재기반이 되는 근본은 어디인지를 늘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대한민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정농단 사건과 그 후속 대처를 하는 당사자들과 비추어볼 때 생각할 여지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선의 왕을 대상으로 한 책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제법 많은 분량이 출간되어 있다. 물론 그 기반은 ‘조선왕조실록’이 될 것이지만 너무 광범위한 분량에 취사선택의 문제도 있어 접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특정한 시각으로 선별하여 살피는 단행본이 한발 더 가깝게 조선의 왕들의 삶과 권력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덕일의 ‘조선왕을 말하다(2010, 역사의아침)’는 매우 흥미로운 시각으로 조선의 왕을 바라보고 있다. 악역을 자처한 임금들 - 태종과 세조,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 연산군과 광해군, 전란을 겪은 임금들 -선조와 인조,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성종과 영조 등과 같이 27명의 조선 임금 중에서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8명을 선별하고 그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맥락으로 조선의 왕을 바라보는 책이 이원준의 ‘야사로 읽는 조선왕들의 속마음(2015, 이가출판사)’으로 소맷자락에 쇠방망이를 숨긴 채 함흥에서 돌아온 태조, 살기 위해 동생 이방원의 눈치 보며 격구와 유흥으로 소일한 정종, 왕위찬탈로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피부병과 악몽에 시달린 세조, 쫓아낸 광해군을 쉽게 죽이지 못하고 병자호란으로 굴욕과 치욕을 겪은 인조, 조선의 대박인 북벌을 끝내 이루지 못한 효종, 무수리 출신 어머니로 열등감에 괴로웠던 영조, 신하들을 비웃을 만큼 자존감이 강했지만 독살설의 의혹을 남긴 정조 등 27명 왕의 속마음을 야사를 통해 흥미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와는 달리 왕의 거처이자 집무공간인 궁궐을 구성원인 왕비와 궁녀들을 통해 왕의 행적의 이면을 살피고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한 암투를 그려가는 신명호의 ‘조선왕비실록(2007, 역사의아침)’, 홍미숙의 ‘조선이 버린 왕비들(2016, 문예춘추사)도 다른 시각에서 왕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조선 왕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으로 봉건국가에서 왕이 가지는 권력의 절대성에 주목하지만 그와는 달리 그 권력 투쟁과 오욕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 한 축을 이룬다.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조선 왕을 말하고 있는 박경남의 ‘그 남자 조선 왕(2012, 판테온하우스)’은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 조선 왕 10명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미지화 된 왕들의 모습에 ‘왜’라고 하는 질문을 통해 조선 왕들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한 부분을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 독특하다.



또 한편으로는 봉건왕조의 권력을 나눠가졌던 신하와 임금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백승종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211, 푸른역사)은 18세기라는 격동의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한 사람(강이천)은 새로운 기회의 시대로, 다른 사람(정조)은 위기의 시대로 인식했다고 바라보는 시각으로 왕과 신하의 다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정구선의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2014, 팬덤북스)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번번이 실패한 사례를 통해 조선 시대를 살다간 선조들의 음주 실태를 살펴보면서 조선의 국왕과 술의 관계와 조선 시대 대표적 주당들의 행태와 술의 폐해를 살펴보는 시각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선의 왕을 살피는 경우도 있다. 김문식과 신병주의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말하는 ‘의궤’(2005, 돌베개)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왕릉’을 담은 김광호의 ‘조선 왕릉’(2016, 혜성출판사), 시대의 반영이기도 했던 임금의 수라상을 중심으로 임금을 바라보는 김상보의 ‘조선왕조 궁중음식’(2004, 수학사)과 같이 직접 정치권력의 중심에 선 왕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왕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왕을 본다는 것은 권력의 최고 정점인 권력자를 보는 것도 되지만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백성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2017년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이 가지는 딜레마 속에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것인가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 글 신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