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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아프리카에 가고 말 테야!
필립 코랑텡(지은이)ㅣ최윤정(엮은이)ㅣ바람의아이들
동물이 등장하는 그림책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재미는 무궁무진하다. 꼼꼼한 취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생태학적 지식부터 인유와 교훈으로 꽉 찬 우화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기도 하거니와 풍자나 해학, 넌센스와 유머 또한 다양한 층위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미 한 마리까지도 ‘인격’을 갖고 ‘철학’을 한다는 그 놀라운 상상력과 생명친화적인 세계관이라니, 이보다 더 어린이책에 적합한 소재가 또 있을까. 필립 코랑텡의 그림책 『엉터리 아프리카』는 여러 모로 동물 그림책의 장점을 두루 갖춘 책이다.
일단, 아기생쥐 피피올리가 아프리카에 가고 싶은 까닭을 보자. 겨울을 맞아 단짝친구인 제비 지네트가 아프리카로 이동하기 때문인데, 철새인 지네트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뻐꾸기, 기러기, 황새 할 것 없이 철새라면 따뜻한 곳으로 가야만 먹이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피피올리의 엄마 말대로 곡식을 먹고 사는 생쥐가 아프리카에 가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피피올리에게 철새의 생태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죽하면 새들처럼 벌레를 먹겠다고 방방 뛰겠는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생활신조라도 되는 듯 피피올리는 어떻게든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철새의 등에 올라타 더부살이 여행을 하는 것. 하지만 덩치가 작은 지네트는 안 되겠고, 황새에게 부탁을 하러 갔다가 식탁에 오른 생쥐를 보고 식겁하고 만다. 피피올리는 이대로 아프리카행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바로 그때, 피피올리의 앞에 새로운 친구가 나타난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까마귀 지고마르가 피피올리와 함께 아프리카에 가기로 한 것이다. 까마귀는 생쥐가 올라타기에 적당한 덩치일 뿐 아니라 지고마르는 무엇이든 다 알고 뭐든 할 줄 아는 ‘척척박사’ 까마귀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막 출발하려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헐레벌떡 뛰어와 함께하기를 청한다. 피피올리와 지고마르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나? 친구란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좋다. 그리고 3이란 가장 안정적이고도 평화로운 숫자다. 동방박사도 삼총사도 지구용사 벡터맨도 셋이 아니던가. 자, 그리하여 세 친구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가 아프리카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우여곡절 끝에 아프리카를 향해 출발한 피피올리와 지고마르, 그리고 개구리(아쉽게도 개구리는 그냥 개구리다). 어렵게 출발한 여행이니만큼 즐겁고 행복하게 아프리카를 둘러보고 안전하게 귀가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셋 중 누구도 아프리카에 가 본 적이 없다는 것. 따라서 믿을 건 까마귀 지고마르의 박학다식뿐이다. 아프리카에 어떻게 가지? 해가 뜨는 쪽을 향해 쭉 가다가 코끼리가 나타났다 하면 그곳이 아프리카다. 그럼 코끼리는 어떻게 알아보지? 코끼리는 코 옆에 뿔이 있으니 뿔을 보고 알아보면 된다. 옳거니!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아프리카. 그곳에는 정말 코끼리가 있고, 그 코끼리는 덩치가 커다랗고 코 옆에는 기다란 뿔이 삐죽 내려와 있는, 지고마르가 설명한 그대로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인상착의가 비슷하긴 하지만 아무리 어린 독자라고 해도 그림 속 동물이 아프리카 코끼리가 아니라는 건 금세 알아보겠다. 그리고 동물 책을 좀 들춰본 아이들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외칠 것이다. 이건 바다코끼리잖아!
우리의 지고마르는 새로운 동물들이 나타날 때마다 원숭이, 악어, 하마 등등을 읊어대며 아는 척을 하지만 실제로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펭귄, 물개, 순록 등등이다. 그러고 보니 펭귄과 원숭이는 똑같이 웃기게 생겼고, 물개와 악어는 똑같이 떼를 지어 기어 다니며, 순록과 하마는 둘 다 커다란 주둥이를 갖고 있다. 지고마르가 아프리카에 도착했다고 꿈에도 의심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다. 그래서 “진짜? 아닌 것 같은데!” 하고 피피올리와 개구리가 미심쩍어해도 지고마르는 끝까지 자신만만하다.
확실히 『엉터리 아프리카』의 진짜 재미는 글과 그림이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 이렇게 논리적인 오류에서 비롯되는 유머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한데 이런 유머는 그림책을 읽는 독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라야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피피올리와 친구들은 자기들이 아프리카를 여행했다고 여기고, 여행 소감을 묻는 엄마 생쥐에게 “네, 엄청 멋졌어요! 근데 너무 추워서 북극인 줄 알았다니까요!” 하고 대답한다. 진실을 아는 건 오로지 그림책 밖의 독자뿐,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 아이들은 지고마르의 엉터리 주장이 되풀이될 때마다 깔깔 웃어댈 것이고 아프리카와 극지방 동물들을 가려낼 줄 아는 아이라면 이름을 고쳐 말하며 지적인 쾌감까지도 느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이들에게 다분히 ‘자극적’이면서도 ‘교육적’이다.
『엉터리 아프리카』는 프랑스 출판사 에콜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1990년에 출간된 이래로 이미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2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그림책이다. 프랑스 그림책의 대표작이라 해도 좋을 텐데 어린이책의 모든 고전이 그렇듯 이 책도 독자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해석에 따라 다양한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따라서 이제 막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주 어린아이부터 동물들에 대해 과학적인 흥미를 느끼는 아이까지 여러 취향의 독자들을 만족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또 여러 번 되풀이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의 일러스트도 눈여겨볼 만한데 움직임과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림이 시원시원하다. 요즘의 세련된 디자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 몰라도 투박하고 선 굵은 그림이 아이들의 감성과 글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어 오히려 그림책의 본질에 충실한 듯하다. 길고 추운 겨울, 아이들에게 건네기 좋은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