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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떠난 리사벳의 모험, 『저거 봐, 마디타, 눈이 와!』
마디타와 리사벳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는 "마디타", "마디타와 리사벳" 시리즈에 등장했던 귀염둥이 자매로, 언제나 별나고 엉뚱한 장난으로 명성이 높다. 그런데 이번엔 언제나 앞에서 일을 벌이고 말썽을 일으켜 리사벳의 부러움을 사던 마디타가 감기로 앓아눕고 말았다. 그래서 잔뜩 골난 마디타는 집에 남겨두고 리사벳 혼자만 하녀인 알바 언니를 따라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선물가게로 간다. 그리고 알바 언니가 잠깐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 사이 리사벳에게는 엄청난 모험이 펼쳐진다.
그림책이니만큼 좀 더 어린 리사벳한테 기회를 준 것이겠지만, 꼬마라고 리사벳을 얕봐서는 안 된다. 리사벳에게도 언니 못지않은 장난기와 용기, 강단이 있으니까. 장난삼아 모르는 사람의 썰매에 몰래 올라탄 리사벳. 곧 썰매가 멈추면 뛰어내릴 작정이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썰매는 씽씽 달리기만 하고 시내를 벗어나 숲길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마을 몇 개를 지나고 만다. 게다가 리사벳의 소리를 듣고 썰매를 멈춘 아저씨는 길가에 리사벳을 내려놓은 채 그대로 가버리고 만다.
세상에, 나쁜 아저씨 같으니라구!
모든 엄마들이 깜짝 놀라고 머릿속이 아뜩해질 만한 상황. 당연히 리사벳도 당황스럽고 겁에 질린다. 엉엉 울면서 “엄마 이리 좀 와!”라고 소리치지만 멀리 있는 엄마가 올 리 없고, 인적 없는 숲 속에 눈은 펑펑 내리고……. 도무지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리사벳은 어쨌든 걷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작은 집에 들러서 외양간에서 한숨 자기도 하고, 눈밭에서 눈집을 지어볼까 고민하기도 하고 기진맥진할 무렵, 마침내 썰매 한 대가 다가온다. 냉큼 달려나가 소리치는 리사벳. “나도 태워 주세요!” 세상에 나쁜 사람이 있다면 좋은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법, 친절한 부부의 호의로 리사벳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어른들이 모두 리사벳을 찾으러 나가고 집에 혼자 있던 마디타는 리사벳이 보고 싶어서 울고 있다가, 기적처럼 리사벳이 나타나자 꼭 껴안아준다.
“넌 정말 말썽꾸러기야. 그래도 난 네가 정말 예뻐!”
꼬마 리사벳은 가슴 철렁할 상황에 처했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는데, 그런 마음가짐은 가족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것들이다. 덕분에 리사벳의 모험이 무사히 끝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거 봐, 마디타, 눈이 와!』는 마디타와 리사벳의 이야기가 늘 그렇듯, 이 조그맣고 귀여운 자매들이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드러날 때 더욱 빛이 난다. 둘은 화해하기 위해 토라지고, 애틋하게 만나기 위해 길을 잃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고, 실은 그 과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재미있는 놀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니와 여동생, 단 둘뿐인 자매는 단짝 친구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고 전우이기도 하다. 엄마 아빠도 들어올 수 없는 둘만의 세계를 따로 갖고 있다고 할까? 밤늦게 슬픔에 잠겨 돌아온 엄마 아빠가 잠들어 있는 두 딸을 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릴 때도, “침대에 아이가 하나 있는 것과 둘이 있는 건 엄청 다르니까요.” 하고 이야기 끝을 맺을 때도, 그 모든 상황을 든든히 받쳐주는 것은 마디타와 리사벳의 끈끈한 관계인 것이다. 리사벳이 단독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이 “저거 봐, 마디타, 눈이 와!”인 까닭도 거기 있을 것이다. 아무려나, 형제가 없는 아이라면 무척 배가 아플 그림책. 그리고 “어른 말 안 듣고 장난치면 큰일 난다”는 교훈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저거 봐, 마디타, 눈이 와!』와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는 서로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언니 오빠가 있는 아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동생들의 감성을 근사하게 그려내고 있어 두 권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그림책이다. 여기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단짝 일론 비클란드가 그린 일러스트는 그림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보다 풍부하고 밀도 있는 색감과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어 또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다. 그림책이긴 해도 꽤 넉넉한 분량의 이야기라 천천히 글을 읽어가며 그 속도에 맞춰 느긋하게 그림을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작가의 새 출판본을 읽는다는 건 꽤 감격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그 작가가 린드그렌이라면야!